덧붙여, 식민지 근대화론은 국사 연구에 오늘날 역사 연구에 있어서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정치한 경제사적 연구 방법을 도입하였다. 특히 국내에서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식민지 근대화론은, 국사학계로부터 ‘역사 공부한 것도 아닌 사람들이..’라는 식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자료발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고도로 성장한 산업사회는 무엇보다 근대화에 따른 것이며 보다 정확하게는 ‘압축적 근대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압축적 근대화’는 우리나라가 겪은 특수한 상황으로서 이는 ‘한국 위험사회’ 형성에 밀접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담론이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 담론에 의해 ‘모성’이 어떻게 평가되어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또한 그 담론들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대중적 현상’으로 변화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하였다.
II.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의 출산정책
1. 일제 시기의 출산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성수 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이 사고들은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대형 참사이다. 이렇게 수백 명의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간 사건들이 90년대 이후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연구는 이러한 의문점에서 시작됐다.
90년대 이후 여러
담론에는 박정희 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담겨있으며, 그 내용은 시기에 따라 변화하였다. 그 시기를 크게 ‘국가 재건기’ ‘조국 근대화기’ ‘ 국민총화기’ 로 나누고 각 시기별로 박정희 체제의 민족주의 담론이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였고 어떤 대내외적 요인에 의해 변화하였는가를
근대화 이념’이 암시한 유토피아에 대한 종말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근대화 이념’이 지금까지 자연과 전통을 “넘어서는”, 한국사회의 구세주와 같은 기획이기를 바랬다면, 그 지점에서 의문이 더욱 쌓이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몇 년동안 “탈근대성”에 관한 담론들이 활발하게 발
담론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담론의 변화는 억압적인 이데올로기기구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으며, 사람들의 일상속에서 암묵적인 동의를 이끌어내는 담론의 구체적 실천, 다시 말하면 헤게모니적 장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은 근대사회의 형성과정에서 그들이 근대적 제도를 그들의
한국사회의 근대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리고 근대의 시기 또한 동일하지 않다. 이 같은 이유는 근대라는 역사적 시공간 속에 나타난 근대성과 근대화의 특징과 성격을 해석하고 규정하는 다양한 시각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에 출현한 근대 담론을 둘러싸고 형성된 역사
부분적으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정치의 근대화를 실현하였다.
Ⅱ. 식민지근대화론(식민지근대성)의 함의
동양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전략이자 문화적 담론체계였으며, 한국의 식민지 근대에 나타난 중요한 특성이다. 즉 동양주의는 식민지체제의 제도와 구조 뿐만 아니라 일
담론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한국의 다문화가 “한국 정부가 근대화, 공업화, 정보화, 세계화에 뒤이어 발전전략으로 내세우는 또 다른 ‘-화(化)’ 정책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다문화? 자기만족이죠!”『경향신문』(2009/11/10)
을 극복하고 넘어서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